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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8/26 [블로거 칼럼] 1995년 8월 24일, 윈도 95가 출시된 날입니다
- 2010/08/26 [블로거 칼럼] 도스 게임의 추억 때문에 다시 꺼낸 CM-32L
- 2010/08/22 [블로거 칼럼] 터보 버튼을 부활시킬 수 없을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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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8/22 [블로거 칼럼] 2분기 세계 PC 시장, 에이서가 흔들린다
[블로거 칼럼] PC업계의 가깝고도 어색한 관계, '윈텔'

윈텔(WINTEL)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대표 운영체제인 윈도(Windows)와 개인용 PC에 쓰는 프로세서를 장악하고 있는 인텔(Intel)을 합쳐서 만쳐서 만든 아주 오래된 합성어입니다. 기업의 이름이 아니라 PC 시장을 지배하는 두 기업을 가리키는 상징적인 용어로 자주 등장하곤 했지요. 최근까지도 윈텔은 여러 매체에 단골 이야깃거리로 쓰일 정도로 질긴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만 PC 시장의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했던 경이로운 용어였던 것이 지금은 조롱거리로 전락한 차이가 있기는 합니다.
윈텔의 시작은 언제?
사실 윈텔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진 것은 정확하게 알려진바는 없습니다. 다만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이 PC 업계의 영향력을 발휘했던 1990년대에 만들어진 용어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마저도 확실하다고 말하긴 힘듭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1.0은 1985년에 출시되었지만, 당시 도스가 지배를 했던 시기였던데다 영향력을 발휘할만한 수준의 운영체제라고 말하기는 어려웠고, x86 진영에는 수많은 경쟁자가 있던 터여서 윈텔이란 용어가 나오기는 어려웠을 때였습니다.
아마 가장 유력한 때는 1990년에 출시된 윈도 3.0이 성공한 뒤 1992년에 출시했던 윈도 3.1 이후가 아닐까 싶습니다. 당시 MS는 사실상 인텔 아키텍처(IA)만 지원토록 했습니다. 이것이 윈도 95까지 이어지면서 32비트 PC 환경으로 옮겨가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윈도의 대성공으로 인텔 역시 시장 점유율과 수익성 향상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윈도 3.1 출시 이후부터 윈도 98 출시 전까지 짧지만 강했던 윈도와 인텔 아키텍처의 동거는 두 기업이 PC 시장의 지배력을 확고하게 다지는 결정적인 한방으로 기억될 기간이었습니다.
말뿐인 동거
사실 짧은 기간 동안 두 기업이 협력한 결과가 좋아 윈텔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지 실제로 윈텔 진영은 늘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비록 1990년대 말까지 서버 진영의 공략을 위해서 MS와 인텔은 협력 관계를 유지했지만, 특성이 다른 두 기업이 영원히 두 손을 맞잡을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인텔은 무어의 법칙에 따라 18개월 주기로 더 나은 성능의 프로세서를 내놓는 업체였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일정 기간에 상관 없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조직이었지요. 윈도 3.1과 윈도 95를 내놨던 기간을 제외하면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텔 아키텍처만 전폭적으로 지원한 것은 사실상 없습니다.
1990년대 말부터 MS와 인텔의 이해 관계가 엇갈리는 일들이 들어났는데요. MS는 IA 또는 x86 외에 ARM을 비롯한 다른 프로세서에서 돌아가는 윈도 CE를 내놓았고 인텔은 MS 외에 유닉스 운영체제와 연동되도록 설계한 IA-64 프로세서들을 고가 시장에 풀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실 그 이전에도 인텔이 개발 중이던 원시 신호 처리기를 MS의 요구(보다는 압력)로 중단한 사례가 있었는데, 이것도 두 회사의 다른 시각을 드러낸 일이었지요.
이후 MS는 IA 뿐만 아니라 다양한 하드웨어 플랫폼을 지향하고 있고, 인텔 역시 MS만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AMD가 PC용 64비트 프로세서를 내놓자 윈도 XP 64비트 에디션을 즉각 내놓은 것과 반대로 인텔은 MS의 주적이었던 애플에 프로세서를 공급하는 한편으로 리눅스, 안드로이드, 미고 등 다양한 운영체제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점이 그러합니다. 과거 UMPC를 내놓을 때도 MS와 인텔이 삐걱거리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에 관한 이야기는 'UMPC, 트집잡기'라는 글에서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윈텔은 지금도 존재할까?
지금 윈텔을 '윈도+x86 프로세서'가 장악한 PC 시장으로 매우 폭넓게 해석하고 있는 이들도 있고, 진짜 MS와 인텔의 관계로 좁혀서 보는 이들도 있지만, 존재 여부를 따지는 게 중요한 상황은 아닐 겁니다. 저는 좁은 관계로 봅니다만, 각자 따로 길을 걷고 있어도 PC 시장의 지배력을 보면 두 기업은 여전히 견고한 상태지요. 세계 곳곳에 널려있는 90% 이상의 PC가 윈도를 쓰고 있고 80%가 넘는 PC가 인텔 프로세서로 작동하고 있으니까요. PC만큼은 여전히 두 업체의 시장 지배력을 무시하긴 힘듭니다.
하지만 이것이 윈텔의 확고한 존재감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과거 윈도가 인텔 프로세서의 판매를 늘렸고, 또한 반대의 현상을 낳으면서 업계의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 윈텔입니다. 하지만 윈도 98 이후 새로운 운영체제가 프로세서의 판매율을 높이지 못했고, 새로운 프로세서 역시 운영체제의 확산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은 이미 PC 업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다만 이번 윈도 7과 코어 i7처럼 어느 정도 출시가 맞물리는 상황에서 PC 업계의 일시적인 마케팅 아이템으로 활용되는 일은 종종 있는데, 이는 윈텔이 더 이상 PC 업계의 이슈를 선도하는 이미지로서 남아 있지 않음을 뜻하는 것이죠.
그나마 PC 영역에서는 윈텔의 존재감이 남아 있지만, 이를 벗어나면 존재감이 거의 없습니다. 모바일이나 가전 분야에서 두 진영은 남남처럼 행동하고 있으니까요. 앞서 예를 들었던 UMPC의 공개 이후에도, 둘은 다른 시각을 드러냅니다. MS는 윈도폰 7에서 x86 프로세서의 지원을 완전히 배제했고, 이에 앞서 인텔 역시 차기 모바일 프로세서를 발표하면서 데스크탑용 윈도 운영체제는 쓸 수 없다고 밝혔지요. 눈에 보이지 않게 감정적 대립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서로 의지하지 않고 각자의 성공을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상황에서 PC 분야의 역사적 관계 외에 특별하면서도 긴밀한 관계는 더 이상 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윈텔(Wintel).
한 때 PC 업계의 대명사로 통했던 이 말은 이제 가깝고도 어색한 관계를 뜻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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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 칼럼] 1995년 8월 24일, 윈도 95가 출시된 날입니다

어제 이 이야기를 한다는 걸 깜빡했네요. 바탕 화면에 '8월24일윈도95.txt'라는 파일 제목을 적어두고도 깜빡 잊어버렸습니다.
지난 8월 24일은 윈도 95(windows 95)가 나온지 15주년 되는 날이었습니다. 1995년 8월 24일에 태어나 2001년 12월 31일을 묘비에 새긴 운영체제입니다. 윈도 4.0 또는 시카고라는 태명으로 개발되다 세상에 나오면서 윈도 95라는 정식 이름을 달게 되었습니다.
윈도 95는 여러모로 의미를 둘 수 있는 운영체제입니다. PC의 이용 환경을 바꾼 운영체제였기 때문이죠. 윈도 95가 출시되기 전까지 PC 운영체제는 대부분 도스(DOS, Disk Operating System)였고, 일부 이용자들 만이 도스 위에서 여러 응용 프로그램을 마우스로 실행하고 조작하는 윈도 3.1을 실행하고 있었습니다. 분명 윈도 3.1도 운영체제였지만, 도스에서 명령어를 실행하는 탓에 마치 도스의 응용 프로그램 같은 모양새를 띄고 있던 것이죠. 윈도 95는 따로 놀고 있던 이 두 운영체제를 합치면서 16비트 도스 운영체제를 32비트 그래픽 인터페이스 운영체제로 전환하는 계기가 됩니다. 물론 종전 도스 환경에서 실행했던 수많은 응용 프로그램들을 감안해 도스 호환성을 유지했지만, 윈도 95의 성공적인 정착으로 인해 이후 윈도에서 도스 호환성을 배제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지요.

PC 운영체제의 큰 변화를 가져온 윈도 95는 사실 지금 시점에서 그 때의 모습을 대해서 일일이 기억하기는 힘듭니다. 단지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한 장의 스크린샷 만으로 당시의 기억을 되새길 뿐이죠. 윈도 95은 지금의 운영체제와 비교해보면 좋게 말하면 복고요, 한 좋게 보면 초라한 행색이었지요. 화려함는 고사하고 그래픽 인터페이스도 딱딱했습니다. 그래도 실행파일 이름을 직접 입력하지 않고, 마우스를 이용해 '시작' 버튼을 눌러 응용 프로그램을 실행할 수 있던 당시 윈도는 그 이전의 사용자 경험을 완전히 바꾼 놀라운 운영체제였던 것은 분명했습니다.(그래도 전 윈도 95의 지뢰 찾기를 빼면 거의 대부분은 도스 모드로 강제 부팅하도록 만들었던 기억이 더 많이 남네요 ㅜ.ㅜ)
윈도 95는 몇 가지 흥미로운 기능들을 선보였는데, 그 중 하나가 플러그 앤 플레이(plug&play)였죠. 플러그 앤 플레이를 줄여서 PnP라고도 했는데, 컴퓨터 실행 중에도 확장 장치를 꽂으면 곧바로 작동하도록 만든 규격입니다. 이 기능은 운영체제 뿐만 아니라 바이오스와 이 규격을 담은 장치가 연결되어야만 쓸 수 있는 기능이었는데, 윈도 95를 발표할 당시에는 상당히 불안했습니다. 또한 쓸 수 있는 장치도 그 때는 거의 없었지요. 더구나 윈도 95 발표 당시 PnP 시연을 하다 블루스크린이 떴다는 후문도 있었고요. 하지만 지금은 거의 모든 외장 장치에서 쓰고 있는 대중화된 규격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또 하나는 255자의 파일 이름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이죠. 운영체제의 파일 시스템이 바뀌면서 긴 이름의 파일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종전 도스에서는 8자의 파일 이름과 3자의 확장자(8+3)를 가진 파일만을 만들 수 있던 것과 비교하면 긴 파일을 만들 수 있었는데, 도스 시절 파일을 짧게 만들던 버릇으로 인해 갑자기 긴 파일 이름을 만들 때는 좀 어색했더랬죠.
당시 인터넷 익스플로러도 첫 선을 보였는데, 그 땐 모뎀을 쓰던 때라 워낙 통신비가 비쌌던 시절이어서 그다지 많이 써본 것 같진 않네요. 지금 떠올려보니 기억에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사실 이게 뭔지도 잘 모를 때였던 것 같습니다. 국내에서는 여전히 PC 통신을 하던 때가 아닌가 싶고요.

이래저래 사용자 경험의 변화를 가져온 윈도 95는 32비트 운영체제답게 그에 맞는 하드웨어를 요구합니다. 32비트 프로세서였지요. 인텔은 일찍이 32비트 프로세서인 80386과 80486을 출시한 상황이었는데, 윈도 95가 출시되면서 이러한 프로세서의 수요를 끌어올리게 됩니다. 아마도 윈텔(windows + intel)이라는 신조어가 탄생한 때라고 봐야겠지요. 절묘한 때를 만난 32비트 PC 운영체제를 쓸 수 있는 32비트 PC 프로세서의 성공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이 지금까지도 PC시장에서 강력한 연합 진영을 구축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하지만 윈텔은 PC 이외의 영역에서는 그다지 힘을 발휘하진 못했고, 실제 '윈도 XP+펜티엄 4' 이후 시대에는 상징적인 의미로만 남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윈도 95에 대한 추억이 많지는 않습니다. 발표 당시 군대에서 열심히 골뱅이 기호 입력하면서 서식을 만들던 하나 워드를 치고 있을 때였거든요. -.ㅡㅋ 그런데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요? 이듬해 도스로 다루던 286 PC를 반납하고 486 PC가 지급된 터여서 비교적 일찍 윈도 95를 무리 없이 써볼 수 있었거든요. PC 잡지 설명을 따라하면서 설치한 뒤 도스와 다른 경험으로 신기했던 느낌만은 여전히 살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글 윈도 95를 그리 오래 쓰진 않았습니다. 완성형 한글을 쓴 탓에 표시할 수 있는 한글 자수가 2335자로 제한되었고, 무엇보다 한글화한 꼬라지가 영... 어쨌든 그 때는 윈도 95와 같은 형태로 계속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 때 경험이 그 이후로도 계속 이어진 덕분에 윈도는 별 어려움 없이 쓰게 됐나 봅니다. 그래도 예나 지금이나 윈도는 더 쉽고 재미있게 발전해야 할 운영체제인 점은 변함이 없는 것 같네요.
뜬금없지만 윈도 95의 15주년을 축하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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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 칼럼] 도스 게임의 추억 때문에 다시 꺼낸 CM-32L

CM-32L을 꺼냈습니다. 정말 오랜 만에 꺼내본 것 같네요. 한 10년은 넘은 것 같습니다. 원래 아이보리 색 몸통이었는데, 저도 모르는 새에 누렇게 변해 버렸네요. 그만큼 시간이 흘렀음을 말해주는 것이겠죠.
CM-32L은 롤랜드의 MIDI 음원 모듈입니다. 음원 모듈이란 악기 소리를 낼 수 있는 장치입니다. 지금은 값싼 PC 사운드 카드도 악기의 원음에 가까운 소리를 재생하지만, 80년대 말에는 MIDI 음원 모듈을 써야만 악기 소리를 낼 수 있었습니다. 당시 음원 모듈이 아닌 애드립(Adlib) 같은 음악 카드도 있었는데, 이는 주파수 변조를 이용해 기계적인 소리를 다르게 내는 것 뿐이어서 실제 악기에 가까운 소리를 낼 수 있던 CM-32L과는 전혀 다른 존재였지요. 실제 악기 소리를 내는 장치니 정말 비싼 거라고 이야기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
원래 음원 모듈은 음악을 만드는 이들이 쓰는 장치지만, 저는 오직 게임을 하기 위해서 산 것이었습니다. 자주 들렀던 어느 PC 매장에 CM-32L의 전신이었던 MT-32를 거쳐 나오는 게임 음악을 한번 듣고는 바로 이거야 하고 살 수밖에 없던, 음원 모듈은 그만큼 감동적인 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물론 소리의 질은 지금이 훨씬 좋지만, 디지털 음원이 많지 않던 당시에는 정말 획기적인 소리였는데, 그 때의 게임음악을 듣고 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튼 이 모듈을 산 뒤에 더욱 게임에 미쳐 살았는데, 당시 이 모듈에서 듣기 좋은 음악의 게임을 만들었던 제작사는 시에라 온라인, 다이나믹스, 마이크로프로즈, 오리진, 웨스트우드 등입니다. 그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음악을 선보인 곳은 시에라 온라인과 다이나믹스(나중에 시에라 온라인에 합병)였는데, 이 둘은 어드벤처 게임으로 매우 잘 알려진 제작사들이었습니다. (애석하지만 지금 이 회사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드벤처 게임의 인기가 사그라지고 새로운 사운드 모듈과 사운드 카드의 능력이 좋아지면서 CM-32L의 전원을 켜는 일이 점차 줄었습니다. 사운드 캔버스라고 부르는 롤랜드의 후속 기종이 나오면서 CM-32L을 지원하는 게임의 수도 급감했지요. 결국 방 구석 사물함 속에 넣어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퇴물이 다 된 CM-32L을 다시 꺼낸 것은 옛 게임 음악에 대한 추억 때문입니다. 사실 윈도로 넘어 오면서 게임 실행 방식도 달라지고 미디 음원을 쓰지 않고 원음을 그대로 들려주는 등 게임 사운드는 발전했지만, 여전히 기억에 남는 것은 과거 멋진 미디 음악을 들려줬던 도스(DOS) 게임들이었죠. 지금도 도스 박스를 실행해 옛날에 즐겼던 도스 게임을 실행할 수는 있는데, 음악이 빠지니 옛날만큼 흥미가 살아나지 않더군요. 때문에 CM-32L을 다시 꺼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더군요. 종전에는 이 장치를 쓰려면 MPU-401이라는 PC 인터페이스 카드가 필요했습니다. ISA 방식의 카드였는데, 훗날 ISA 인터페이스가 사라지면서 이 카드도 쓸 수 없게 되었지요. 대신 MIDI 장치를 연결할 수 있는 별도의 인터페이스들이 여럿 나왔는데 MPU-401과 호환되는 것은 드물었습니다. 그런데 도스박스를 보니 USB 미디 케이블만 있어도 된다고 하기에 얼른 주문했습니다. 참 조악하다 싶지만, 그래도 USB 단자에 꽂아주니 드라이버를 따로 잡지 않아도 스스로 인식되더군요.
도스박스의 미디 옵션 값을 바꾼 뒤 게임 설정에서 미디 모듈을 지정하고 실행하니 그 때 들었던 소리가 그대로 납니다. 아직 고장 안나고 작동하는 것도 용하다 싶었는데, 역시 그 때 기억했던 음악을 다시 들으니 마음이 뭉클해지네요. 어제까지 음악이 괜찮았던 시에라와 다이나믹스, 오리진의 게임을 실행해 봤는데, 지금 들어도 음악 만큼은 정말 괜찮은 것 같습니다. 스페이스 퀘스트 3와 폴리스 퀘스트 2, 라이즈 오브 드래곤, 래리 2, 윙 코맨더, 스트라이크 코맨더, 중국지심, 코드네임 : 아이스맨, 실피드, 스텔라 7, 울티마 6... 이러한 게임들의 음악을 듣다보니 스페이스 퀘스트 3는 본의 아니게 게임을 끝까지 다시 즐기고 말았습니다.

여전히 미디 음악을 들어보고 싶은 도스 게임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게임을 기억하는 이유는 이야기가 아니라 미디 음원으로 들었던 음악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면 팝송과 가요를 들으며 추억을 쌓았을 이들과 다르게 게임 음악을 들으며 게임을 기억하고 있던 별난 청춘이었나 봅니다. 그 때는 몰랐는데, 확실히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
아무튼 도스 게임의 추억 때문에 오랜 만에 CM-32L을 꺼냈는데, 정작 다시 듣게 된 게임 음악을 때문에 오래된 기억들을 떠올리게 된 듯 싶네요. 그 기억들을 즐기면서 주말 폭염을 잘 견뎌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덧붙임 #
당시 도스 게임의 미디 음악을 듣고 싶은 분을 위해 소개합니다. ^^
시에라 사운드트랙 콜렉션
http://www.queststudios.com/quest/collectio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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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 칼럼] 터보 버튼을 부활시킬 수 없을까?

요즘 이 드라마를 안본 세대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과거 <전격 Z작전> 같은 인기가 많던 고전 드라마에서 터보 버튼을 누르자마자 쏜살같이 튀어나가던 키트를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터보 버튼을 눌러 달아나거나 위험에 빠진 누군가를 구해주러 달려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키트 자동차 하나쯤 갖고 싶은 마음이 들던 때가 있었지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키트가 스스로 터보 기능을 작동하는 게 아니라 언제나 주인공 마이클이 그 버튼을 눌렀다는 것입니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차를 사면 언제나 저런 터보 버튼을 한 번 눌러보겠다는 환상을 가졌던 이가 많았을 텐데 정작 차를 사면 그런 터보 버튼은 없죠. ^^;
뜬금없이 터보 버튼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것은 기술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는 아닙니다. 단지 터보 버튼이 주었던 환상 때문이죠. 내가 필요할 때 이 버튼을 누르면 더 빠르게 뭔가를 해낼 수 있다는 일종의 환상 말입니다. 물론 실제로 터보 버튼을 누르면 기계는 그 이전보다 더 나은 성능을 발휘하는 게 사실이지만, 이용자는 그것을 누르기 전과 후의 마음 또는 믿음은 확연히 다릅니다. 작업의 처리는 분명 기계가 하는 것인데 그 일을 하는 사람의 마음을 좀더 긍정적으로 바꾸는 보이지 않는 기능이 터보 버튼에 있는 것이죠.

저는 그 터보 버튼이 요즘 출시되는 PC에 달리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니, 부활시켜야 한다고 말해야겠네요. 옛날 PC에는 터보 버튼이 있었으니까요. 아마도 펜티엄 이후부터 PC를 쓰는 이들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XT 시절부터 PC를 쓰던 이들은 터보 버튼을 잘 알고 있을 것이고 그에 대한 추억도 남다를 것입니다. 터보 버튼을 누르기 전과 누른 뒤의 DIR을 입력했을 때 파일 목록이 올라가는 속도만 보고도 감탄했던 때였고, 터보 버튼만 누르면 게임이 팍팍 돌아가던 그 때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오버클러킹에 대한 정보도 없고 정보나 지식을 챙기지 않아도 이용자는 버튼 한 번만 누르는 것으로 편하게 더 빠른 속도를 만끽할 수 있던 그 때는 누구나 터보 버튼을 누르는 것만으로 더 빠른 PC를 쓴다는 환상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터보 버튼이 없습니다. 터보 버튼을 통해 누구나 누릴 수 있었던 성능 향상은 사라지고 언제나 처리 성능이 좋은 똑똑한 PC만 있습니다. 작업량이 많으면 CPU가 더 많이 일하고 작업량이 적으면 CPU도 쉬면서 전기료도 아껴준답니다. CPU가 이용자의 작업 환경에 따라서 그 능력을 조절할 줄 안다니 정말 똑똑해진 것은 좋은 일이죠.

어쩌면 참 좋아진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문제는 이런 CPU가 들어 있는 PC를 쓰는 이용자에게 어떤 감동도 주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런 성능과 똑똑한 기능을 가진 CPU가 들어 있는 것 까지는 좋지만, 전원과 리셋 버튼을 빼면 이 녀석을 통제할 수 있는 눈에 보이는 수단이 없거든요. 더구나 PC의 성능이라는 게 CPU 이상의 것이 나오기 힘드니 제조사 입장에서는 조금 더 나은 성능을 소비자에게 주려는 노력을 거의 안합니다. 당연히 성능적인 부분에서 그 PC의 개성은 조금도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고, 소비자는 무엇을 사더라도 같은 성능일 수밖에 없으니 결국 겉모양이나 부가장치의 제원을 보고 좀더 싼 제품을 사는 것이 그야말로 장땡입니다.
그러니 요즘 제조사 PC에서 느껴지는 감동이라는 게 없습니다. 여러 부품들을 모아서 찍어내듯 PC를 만들어내는 제조사만이 단가 경쟁에서 승리하고 있는 현실에서 정말 멋지다고 말할 수 있는 PC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지요. 물론 성능적으로 차별화한 PC는 있지만, 그것 역시 가장 비싼 부품만 모아 놓은 것 이상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정말 만족할 수 있는 제품을 내놓은 기술력 가진 업체가 지금 존재하는 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PC 업계에 터보 버튼을 부활시켜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대량 생산은 대량 생산대로 가야 할 이유가 충분하지만, 이용자가 인지할 수 있는 PC의 기술력 또한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터보 버튼은 분명 한계까지는 아니어도 여유가 되는 한 성능을 끌어올릴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고, 그 기술을 찾아내 적용한 PC가 있다면 성능적 차별성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똑같은 제원을 쓴 다른 PC와 같은 가격에 판다면 차별성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상대적인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할 수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이용자는 같은 값의 PC로 필요한 때 더 나은 성능을 향상할 수 있는 선택권을 얻게 됩니다. 앞서 "내가 필요할 때 이 버튼을 누르면 더 빠르게 뭔가를 해낼 수 있다는 일종의 환상"이라는 터보 버튼의 숨겨진 의미까지 더한다면 그 PC의 경쟁력은 다른 PC들을 압도할 수 있겠죠.
물론 현실적, 기술적으로 터보 버튼을 추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수 있습니다. XT나 AT 시절의 터보 버튼을 쓰던 때와 달리 지금의 오버클러킹은 더 복잡해졌고, 각각의 이해 당사자마다 해결해야 할 과제도 분명 더 많습니다. 하지만 똑같은 부품을 쓰고 성능의 개성이 없이 겉만 번지르르한 PC만을 내놓고 있는 현재의 시장 상황이 너무 재미가 없습니다. 지금 PC 시장이 잘 나간다고 하지만, 결국 의미 없는 경쟁만 한 채 재미없는 제품만 드글대는 PC 시장을 소비자는 떠날 것입니다. 터보 버튼을 누를 수 있던 키트를 소유하고픈 로망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PC 업계도 그런 로망을 안길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는 데 노력을 했으면 합니다. 터보 버튼은 그러한 장치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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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 사용기] 3D 노트북에서 본 3D 사진, "아! 이런 느낌이구나~"

소니 알파 넥스-5입니다. 요즘 이 녀석으로 사진 찍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홍콩 출장을 다녀오자마자 곧바로 지른 것이 바로 이 소니 알파 넥스-5였는데, 어디에나 들고다니기 편하다보니 예전보다 찍는 사진의 수가 확실히 많아졌습니다.
다른 카메라도 아니고 넥스-5를 산 이유는 작은 바디인데도 좋은 화질의 사진과 풀 HD 동영상을 찍을 수 있어서 세컨 카메라로 쓰려는 이유였는데요. 결정적인 또 다른 이유가 펌웨어를 통해 3D 촬영을 할 수 있다고 광고했기 때문입니다.

보통 3D 촬영을 하려면 이처럼 렌즈가 두개 있어야 정상입니다. 각도가 다른 두 개의 렌즈에서 찍은 사진을 재생할 수 있는 다른 장치에서 보면 입체감이 살아 있는 사진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렌즈가 하나 뿐인 알파 넥스5가 3D 사진을 찍는다니 이상한 것도 당연합니다. 그렇다고 뻥치는 건 아니고요.
알파 넥스는 일반 모드에서 3D 촬영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파노라마 사진을 찍을 때만 3D로 촬영할 수 있거든요. 펌웨어를 업데이트하고 나면 알파 넥스에 3D 파노라마 모드가 있는데, 이 모드에 두고 사진을 촬영하면 3D 이미지 파일 형식인 MPO로 저장됩니다.

알파 넥스의 파노라마 사진이 만들어지는 원리는 이러합니다. 한 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연속으로 사진을 찍으면서 부분적으로 왼 눈과 오른 눈으로 보이는 이미지를 두 장 만든 뒤 이를 하나로 합칩니다. 이런 방식으로 렌즈 1개 만으로 3D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이를 이용한 모바일 앱이나 다른 카메라들도 조금씩 눈에 보이더군요.
어쨌든 펌웨어 업그레이드 이후 가끔씩 3D 파노라마 사진을 남겼는 데 이렇게 찍은 사진을 한동안 볼 수 없었습니다. 3D 사진을 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3D TV에서 소니 넥스의 파일 정보를 제대로 알애채지 못하는 탓에 볼 수가 없던 것이죠. 다른 회사의 3D 사진은 볼 수 있다는데, 같은 파일 형식의 3D 이미지여도 넥스5로 찍은 것은 3D TV에서 읽지 못하더군요. 물론 이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을 거라 믿지만, 일반인들이 직접 만드는 3D 입체 컨텐츠를 소화할 수 없는 3D TV에 대한 비판도 나올 것 같네요. 3D TV 업체라면 3D 사진을 찍는 일반 카메라에 대한 대응을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넥스 5로 찍은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됐습니다. 지난 7월 중순 LG 전자가 3D PC와 3D 노트북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전시된 노트북에서 넥스 5로 찍은 사진을 봤던 것이죠. 그 때는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바로 재생해봤는데, 참 묘하더군요. 동영상을 볼 때와 또 다른 느낌이었거든요.
하지만 시연 장소에서 제가 찍은 사진을 오래 두고 보기는 힘든 터여서 그 발표회가 있는 지 10일 쯤 뒤에 그 발표회에 나왔던 3D 노트북을 잠시 빌렸습니다. 그 사진을 좀더 자세히 보고 싶었기 때문이죠. LG XNOTE R590은 사실 일반 노트북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화면 위에 편광 필름을 붙여 놓은 터라 편광 안경을 쓰고 보면 입체 화면이 보인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3D 기능을 제외하면 여느 노트북과 거의 같은 제원이라고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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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가장 인상적인 사진은 아래 사진입니다. 더블로거 3기 발대식에서 찍은 사진인데, 앞에 있는 사람과 뒤에 있는 사람, 그 뒤의 벽이 모두 다른 공간에 배치된 느낌이더군요. 물론 사진 안에 사람이 아니라 입간판을 앞뒤로 세운 듯한 느낌도 들지만, 이 사진 속 그 공간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 하나하나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더군요

그냥 느낌이 다르고 신기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다른가 탐구하고 싶은 욕구 때문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공간이 있는 사진을 보는 것이 평면적 느낌의 사진을 보는 것과 같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평면적 사진에 공간을 더한 것 자체가 별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 보니 그 차이는 생각보다 크게 보였습니다. 물론 추억의 깊이나 무게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만, 우리의 추억에 공간을 더해서 보는 것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알겠더군요. 이제 3D 사진을 찍어야 할 이유는 조금 찾은 것 같습니다.
덧붙임 #
어떤 분이 그러더군요. 안경을 벗은 현실은 이미 입체인데, 그것을 자각 못하고 3D 입체 영상이라는 마케팅에 함몰되어 있다고 말이죠. 현실은 이미 입체라는 말에 동의하는 한편으로 입체감 있는 현실을 입체감있게 되새길 수 있느냐는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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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 칼럼] 인텔의 맥아피 인수는 미래의 프로세서에 대한 인텔의 투자

인텔이 종합 보안 업체 맥아피를 인수했습니다. 인수금액은 76억8천 만 달러. 원화로 환산하면 무려 9조에 이르는 가격입니다. 60%의 프리미엄을 얹어 주당 48달러에 인수했습니다. 그것도 현금으로 쐈답니다. 통 크게 질렀더군요. 그런데 참 흥미롭습니다. 프로세서 제조 업체가 소프트웨어 보안 업체를 인수했으니 말이지요. 그러니 이번 인수를 두고 여러 뒷말이 오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번 인수는 프로세서의 미래를 위한 인텔 다운 결정의 한 예를 보여준 것입니다.
인텔은 많은 이들이 잘 알다시피 프로세서 기업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PC나 노트북의 처리 장치를 개발, 생산하는 기업이죠. 하지만 인텔이 생산하는 프로세서를 보면 단순히 PC나 노트북 용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계산 능력을 요구하는 모든 컴퓨팅 장치에 맞는 프로세서를 생산하고 있거나 개발 중입니다. PC와 노트북은 물론, 태블릿과 TV, 셋톱박스 자동차, 스마트폰, 서버 등 수많은 장치에 맞는 프로세서를 공급하고 있거나 그럴 계획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각 제품별로 들어가는 CPU는 다르지만, 영역별로 보면 PC와 가전, 모바일, 클라우드 컴퓨팅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인텔의 프로세서가 영향을 미치도록 확장해 나가는 중입니다. 하지만 인텔은 종전까지 이러한 영역의 제품들에 대해 에너지 효율성과 연결성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서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좀더 적은 전력으로 더 좋은 성능을 내고 좀더 편하게 네트워크에 연결할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이지요.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지금까지 프로세서의 성능만으로 경쟁력을 확보해 왔던 인텔의 다음 경쟁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했던 것이지요. 인텔 프로세서가 모든 영역에서 쓰도록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경쟁력을 가진 프로세서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인텔이 이러한 고민을 하는 것은 프로세서 기업이 된 아픈 사연 때문입니다. 지금 인텔은 프로세서 기업이지만, 사실 1970년대에는 DRAM을 비롯한 메모리를 생산하던 기업이었습니다. 그러나 강력한 경쟁사들로 인해 DRAM 부문의 매출액이 감소하고 반대로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매출액 증가하면서 결국 1982년 이후 메모리 기업이 아닌 프로세서 기업으로 전략 방향을 수정하게 되지요. 이때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의 인텔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당시 DRAM 부문이 큰 손실을 보게 됐음에도 주력 사업을 프로세서로 전환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인텔은 DRAM 시장의 경쟁에서 밀려난 부끄러운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몇 가지 전략을 설정합니다. 아키텍처 리더십과 세계적 수준의 생산 역량 강화, 단일 공급 업자 전략 등이었지요. 그 결과 1990년 대를 보내면서 x86 프로세서 시장에서 힘을 겨루던 경쟁자들을 거의 모두 물리칩니다. 이후 인텔은 중요한 변화의 시기마다 프로세서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우고 그에 따른 행동들을 합니다. 2000년대 초 인터넷이 새로운 기회를 만들 것을 예측하고 네트워크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관련 기업 인수를 통해 확보한 기술력을 결합, 데스크탑 시장과 서버 시장 등에서 인텔 프로세서의 제품 경쟁력을 강화한 것도 그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인텔이 프로세서를 중심으로 전략을 짜는 이유는 하나 입니다. 인텔이 메모리에서 프로세서로 주력 사업을 전환한 이후, 인텔에 있어 절대로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핵심 사업이 바로 프로세서이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목적이 명확한 상황에서 인텔이 할 수 있는 것은 경쟁력 있는 프로세서를 지속적으로 내놓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고성능 프로세서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그 프로세서를 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일들을 만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프로세서의 성능을 끌어올리는 데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인텔의 사업 전략과 결정은 프로세서를 더 많이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결국 이번 맥아피 인수가 인텔 프로세서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는 인텔이 직접 보안 사업을 하겠다는 목적보다 머지 않아 여러 컴퓨팅 장치를 향한 위협으로부터 보안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 경쟁력 있는 프로세서 환경을 제시하겠다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일부 모바일 시장의 보안 문제만을 단편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인텔 프로세서가 적용되는 모든 환경을 통틀어서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개인 컴퓨팅, 가전 컴퓨팅, 모바일 컴퓨팅, 클라우드 컴퓨팅에 이르기까지 인텔 프로세서를 쓰는 모든 컴퓨팅 장치가 더 뛰어난 보안성을 갖추고 있다면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답은 뻔하지 않겠습니까?
경쟁력 있는 프로세서 환경을 만드는 것. 이것이 인텔이 지금까지 해왔던 사업 방식이고, 앞으로도 이같은 전략적 결정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인텔의 맥아피 인수는 미래의 컴퓨팅 환경에서 프로세서가 생존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을 튼 전환점이 될지도 모르지만, 이처럼 미래의 프로세서에 대한 인텔의 투자는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생존 전략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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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 칼럼] 2분기 세계 PC 시장, 에이서가 흔들린다
지난 7월 14일 가트너가 2분기 세계 PC 선적량에 대한 시장 조사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이번 발표는 사실 지난 1분기 PC 시장과 크게 다른 점이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성장세는 커보이는 데, 1분기와 비교해보면 소폭 감소한 정도에 그쳤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지난 2분기 세계 PC 선적량은 8천286만7천200대로 전년 동기 6천863만1천500대보다 20.7% 늘어났습니다. 지난해에 비하면 확실히 올해 PC 경기가 살아나고 있는 것을 느낄만큼 큰 폭으로 증가했지만, 8천 만대 시장 규모는 이미 지난 1분기에서 이미 보여준 터여서 큰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8천 만대를 넘긴 시장으로 유지하는 점은 PC 시장에 대한 부정적 전망을 벗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PC 업체 순위도 지난 1분기 그대로입니다. HP와 에이서, 델, 레노버, 아수스, 도시바 순입니다. 순서는 변함이 없지만, 성적은 이전과 다릅니다. 이 가운데 1분기보다 좋은 성적표를 가져간 업체는 레노버 뿐이었습니다. 130만 대 이상 출하량을 늘린 레노버를 제외한 다른 업체는 모두 시장 점유율이 하락했더군요. 그런데 레노버가 어디로 이 많은 PC를 보냈는지 불분명 합니다. 북미와 유럽에서는 순위권에 없기 때문이지요. 결과적으로 아시아권, 특히 중국 내수 시장의 힘이 아닌가 추측되지만, 이와 관련한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당분간 의문부호만 붙여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2위 에이서의 하락이 두드러집니다. 무려 1.3%나 빠졌더군요. 델은 0.3%의 점유율만 빠진 터라 다른 업체에 비해 잘 선방한데다, 에이서의 하락폭이 컸던 터라 0.6% 차로 간격을 좁혔습니다. 1분기만 해도 두 회사의 격차가 2.1%나 되었던 터라 이번 분기에 더 벌어질 거로 보였지만, 이제 2위 판도는 안갯속을 달리게 됐습니다. 특히 에이서는 유럽아프리카 시장에서 판매 감소와 북미 시장에서 성장을 하지 못한 게 뼈아픈 일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이번 가트너 시장 자료에서 가장 눈길이 갔던 것은 북미 시장입니다. 애플이 드디어 4위 업체로 올라섰기 때문이죠. 애플은 1분기 139만8천 대보다 35만 대 더 많은 174만8천800 대를 기록해 도시바를 그 아래로 끌어내렸습니다. 도시바는 선적량이 소폭 증가했지만, 애플이 장사를 더 잘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플이 4위로 올라선 것과 대조적으로 에이서의 선적 급감이 두드러집니다. 1분기 270여만 대를 선적했는데, 이번 분기에는 이번 분기 202만8천300대를 선적했습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북미 3위 자리를 애플에 내줄 판입니다.
그런데 그 배경이 조금 흥미로운 것은 애플 아이패드가 일시적으로 넷북 같은 미니 노트북을 잡았기 때문이라는 견해를 내놨기 때문인데요. 에이서가 업계 2위로 올라오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넷북을 포함한 미니 노트북이다 보니 아이패드 출시에 따라 영향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가트너는 이런 현상이 지속될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했는데, 연말 또는 다음 분기 실적을 봐야 좀더 확실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가트너는 아직 태블릿을 PC 범주에 넣지 않았습니다. 아마 아이패드 같은 태블릿을 넣는다면 애플 시장 점유율은 지금과 확 달라져 있을 테니까요. 이는 다른 업체들에게 공평한 게임이 아니라고 생각할 테지만, 오히려 태블릿을 넣지 않음으로서 지금의 PC 시장 상황을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1분기와 2분기 PC 시장을 보면 전체적인 규모는 200만 대 정도 줄었어도 일반적인 PC 구매 시기를 벗어난 시점에서 나름 시장이 잘 유지되고 있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다른 업체들이 시장에 따라 잘 방어한 모습을 보인 것과 달리 에이서는 전체 시장에서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동안 값싼 PC 제품군으로 빠르게 치고 올라왔던 에이서였기에 이제 한계에 이른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을 만한 모습입니다. 이것이 섣부른 판단일지 아닐지는 다음 분기 실적에 달려 있다고 봐야겠지요.




